영화 <박열>, 박열 후미코 부부 실화 제대로 알고 보자!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독립운동가이지만, 끝나고 나서는 그들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밖에 없는 그런 영화를 추천드립니다! 저는 개봉 당시 극장에서 홀로 이 영화 박열을 봤고, 부끄럽게도 박열 의사를 알지 못할 때였어요. 스토리에 충격! 실화임에 또한번 충격!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에 더 놀랐던 작품입니다. 가네코 후미코 역의 최희서 배우가 꽤 인상 깊었는데요. 이 포스팅을 통해 독립운동가 박열 후미코 부부에 대해 조금 더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박열, 그는 누구인가?
박열의 본명 박준식. 경북 문경 출생인 박열은 본디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자 가세가 기울어 어렵게 생활합니다. 소학교 졸업 전 한국인 교사가 지금껏 일제의 압박으로 거짓 교육을 시켰노라며 울면 사과한 일이 있은 후, 박열은 반일 사상에 눈을 뜨게 됩니다.
△ 박열 실제사진
이후 3.1독립만세운동에 적극 가담하였으며, 반제국주의적 표현 방식으로써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일본으로 떠납니다. 당시 많은 애국 독립지사와 청년학생들이 그러하듯, 독립운동의 근거지와 삶을 찾아서 그렇게 일본으로 갑니다.
1919년 일본 도쿄로 건너간 박열은 조선 최초 무정부주의 단체인 흑도회 멤버가 되어 아나키즘 신봉자로 활동합니다. 흑우회는 언론출판사업에 주력한 항일 아나키스트 단체로, 노동자들의 직접 행동과 항일 투쟁을 고조하기 위한 노력을 해나갑니다. 그리고 1923년 4월, 보다 적극적인 항일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연인 가네코 후미코를 포함 총 21명으로 구성된 비밀 결사 불령사를 조직합니다.
1923년 9월 일본 관동대지진으로 사회 불안이 커져갔으며 개엄령이 시행됩니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등 숱한 유언비어가 난무했고, 조선인과 중국인들이 학살되는 사건도 발생하죠. 밀정에 의해 박열과 연인 후미코가 체포되는데, 일본은 히로히토 황태자 암살을 위해 폭탄을 반입했다며 사건을 과장, 조작합니다. 당시 일본의 좋지 않은 여론을 박열 사건을 통해 잠재우려 했던 것!
1926년 2월, 그렇게 재판장에 선 박열은 또다시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합니다.
첫째. 피고로 법정에 서는 것이 아니니 죄인 취급하지 말 것!
둘째. 조선민족을 대표해 법정에 서는 것이니, 조선의 예복을 입게 할 것!
셋째. 조선말을 쓸 것이니, 통역관을 세울 것!
넷째. 재판관과 동등한 높이에 자리할 것!
다섯째. 재판 시작 전 선언문을 낭독케 할 것!
△ 박열 후미코 사진
일본 법정은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얼마 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됩니다. 1945년 10월 27일 21세의 젊은 나이에 감옥을 간 박열은 해방 이후 22년 2개월 복역 끝에 세상에 나오게 되죠.
가네코 후미코, 일본 여성이 독립유공자 되다!
독립운동가 박열의 아내 가네코 후미코에게 일본인으로는 두번째로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 되었습니다. 박열 의사와 함께 항일운동을 했던 공을 인정받은 것인데요. 첫 번째로 건국훈장을 받은 일본인은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지하고 박열 의사와 가네코 여사 등 독립운동가들의 변론을 맡았던 후세 다쓰지 변호사입니다.
△ 가네코 후미코 실제사진
1903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태어난 가네코 후미코는 부모 모두에게 양육을 거부받아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무적자로 어두운 유년시절을 보냅니다. 7년간 조선에 거주하던 고모의 집에서 학대를 받으면서 살기도 했죠. 17세가 되던 해 다시 혼자 도쿄로 돌아왔고, 공부와 생계를 병행하면서 사회주의 사상에 눈뜨기 시작합니다.
1922년 봄부터 아나키스트 박열과 동거를 하며 함께 투쟁하며 비밀 결사 흑우회를 결성하기도 하죠. 자신의 노예적인 삶을 거부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국가 및 사회의 모순에 치열하게 투쟁합니다.
가네코 후미코는 박문자라는 필명으로 활동했는데, 재판에서도 한국식 의복을 입고 나타나곤 합니다. 두 사람은 감옥에서 혼인 신고를 하지만 1926년 사형(무기징역 감형) 선고를 받고 몇달 후 감옥에서 숨집니다.
공식 사인은 자살이라고 알려졌지만, 시체검안서에는 자살 수단이 표기되지 않아 의문을 남겼죠. 조선에 뼈를 묻겠다는 그녀의 바람대로 박열 가계 선산에 묻힌 가네코 후미코. 옥사 92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되었네요.
영화 박열
"우리, 동지로서 동거합니다."
"재판장! 자네도 수고했네. 내 육체야 자네들이 죽일 수 있지만, 내 정신이야 어찌하겠느나?"
"나는 박열의 본질을 알고 있다. 그런 박열을 사랑하고 있다.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과실과 모든 결점을 넘어 나는 그를 사랑한다."
"개인의 자유의지로 결정한 선택이 비록 죽음을 향한 길일지라도 삶의 부정이 아닌 긍정일 것이다."
"세상의 진실에 깊숙이 다가가는 자는 빨리 죽기 마련이네"
"만세! 만세!! 만세!!!"
관련글 ☞ [Movie(영화)] -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알고 영화보기! <우키시마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