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 부마항쟁 역사 알기

대한민국 4대 민주항쟁, 부마민주항쟁에 대해 알아봅시다!
부마민주항쟁이 40주년을 맞아 2019년부터 국가기념일(10월 16일)로 지정되었습니다!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과 더불어 4대 민주항쟁으로의 가치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인데요. 부마항쟁이란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부산과 마산 지역에서 일어난 반정부 민주항쟁을 말합니다. 부마항쟁의 민주적 가치를 기억하기 위해 그 역사를 다시 한번 알아보도록 해요~!



부마민주항쟁 원인과 배경

1978년 7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해 치러진 제9대 대통령 간접선거는 박정희 단독 후보를 두고 치러집니다. 총 참여 2,578명 중 찬성 2,577표와 무효 1표로 당선이 확정되었고, 유신독재 장기화로 인해 국민들의 불만이 쌓여만 갑니다.





그해 12월 국회의원 선거는 신민당 34% 득표, 공화당 32% 득표로 사상 최초로 야당이 승리하게 되고, 이러한 변화의 흐름과 재야세력의 저항이 고조되어 유신 정국은 긴장이 고조됩니다. 더불어, 당시 한국경제의 위기로 중소기업의 부도율이 치솟고 폐업과 노동자 해고 등의 어려운 경제상황에 놓이게 되죠.

1979년 8월 YH무역사건. 여성노동자 170여 명은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신민당사에서 농성을 벌였고, 정부가 이를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노동자 김경숙 씨가 사망하게 됩니다. 박정희 정권은 오직 시위를 벌였다는 것이 중요했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노동자의 주장은 중요치 않았죠.









신민당은 YH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백서를 발표하고 본격적인 반정부 투쟁을 시작하지만, 그해 10월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의원직 제명안이 변칙 통과되면서 김영삼의 의원직이 박탈되고 맙니다.





부마민주항쟁 전개

1979년 10월 16일 아침 10시경. 부산대학교 학생들로부터 유신독재의 종말을 고하는 외침이 시작됩니다. '유신철폐! 독재타도!' <민주선언문>이란 이름의 유인물은 학원의 민주화, 언론자유, 인권보장에의 신념을 담고 있으며, 애국가와 반정부 구호를 함께 외쳤습니다.







2~30명의 시위는 순식간에 5천 명으로 불어났고, 경찰 벽에 막힌 시위대는 부산 남포동으로 이동하여 시위를 이어나가죠. 진압 경찰과의 충돌로 분노한 시위대는 공화당사와 경찰서 등을 공격하기도 했고요.











이튿날에는 시민들까지 합세하여 음식을 나누고 응원하며 시위대를 숨겨주기도 합니다. 결국, 10월 18일 정부는 부산 일원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각 대학교 휴교 및 야간 통행금지 2시간 연장 조치를 취하는 등 강경 대응을 시작합니다.





시위는 부산을 너머 마산으로 까지 확산되었고 1,000여 명의 경남대 학생들이 격렬한 시위를 벌이게 되죠. 8천여 명으로 늘어난 시위대는 마산 시내 곳곳에서 유신반대 시위를 전개합니다. 이에, 부산 일원에 계엄령을 선포한 지 2일 뒤인 10월 20일 정오를 기해 경상남도 마산과 창원 일대에 위수령을 발동하게 됩니다.

위수령이란 육군 부대가 한 지역에 계속 주둔하면서 그 지역의 경비와 시설물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정부기관과 공공건물에 대한 경계를 하게 된 것이죠. 마산도 부산처럼 통행금지 2시간 연장과 경남대 무기한 휴교 조치가 취해졌어요. 계엄령이 선포된 부산은 공수부대가 동원되어 시위대에 대한 강도 높은 진압이 시작됩니다.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무력 진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유신정권은 그 정당성을 완전히 상실했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부마민주항쟁 그 후, 10.26 사건

4일간의 부마민주항쟁은 계엄령과 위수령 발동으로 부산에서 1,058명, 마산에서 505명 등 총 1,563명이 연행됩니다. 군부대의 주둔으로 인해 시위는 소강 상대에 접어들었고, 부마항쟁 진압 6일 뒤 10.26 사건이 발생하면서 유신독재 체제가 종언을 맞이합니다.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 안가에서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성이 울렸고, 18년의 박정희 정권이 막을 내리게 되죠.  





부마민주항쟁 의의

부마민주항쟁은 유신독재 종식에 불을 붙인 결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학생 또는 소수 지식인 중심의 민주화 운동에서 보다 확장되어 노동자와 시민까지 광범위하게 참여함으로써 당시 정권에 큰 타격을 가할 수 있었습니다. 1960년에 일어난 4.19 혁명에 이어 민주주의 성취를 위한 대규모 항쟁이었고, 이후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6.10 민주항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부마항쟁에 처음 투입되었던 공수부대가 7개월 후 광주에 그대로 투입되어 시위대를 잔혹하게 진압했던 역사적 사실이 또 한 번 가슴을 아프게 하네요. 



△ 부마항쟁 사진

이상으로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을 맞아 그 역사를 다시한번 살펴보았습니다. 혹시, 부마민주항쟁 공휴일인지 궁금하신가요? 국가기념일은 본래 공휴일이 아니며, 일부 기념일의 경우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는데요. 10월 16일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은 공휴일이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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