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키시마호 폭침사건 알고 영화보기! <우키시마호>

영화 <우키시마호>,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제대로 알고 보자!
해방 전후 강제 징용 문제와 관련하여 또 하나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을 알고 계시나요? 1945년 광복을 맞은 지 열 번째 날에 벌어진 대참사가 영화 우키시마호를 통해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진상조사가 이뤄지지 못해 여전히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일본의 고의 폭침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발견되어 기사화되고 있지요. 영화 <우키시마호>는 생존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로 9월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영화 우키시마호

광복 직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설렘을 갖고 귀국선에 오른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이 한순간에 일본 앞바다에서 유명을 달리한 사건! 참혹한 역사인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에 대해 알아보고 우키시마호 영화를 관람해보는 건 어떨까요?

 

1945/8/22 우키시마호 탑승

1945년 8월,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여 완전한 항복을 선언한 후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우키시마호에 탑승시킵니다. 강제로 끌려와 노역을 하였던 피해자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과 설렘을 가득 품고 있었을 테고, 어떠한 지불금도 없이 공짜로 보내준다고 하는데 이를 마다할 사람도 없었죠.







우키시마호는 조선인 3,725명과 일본 해군 승무원 225명을 태우고(*일본 정부 발표) 일본 최북단의 아오모리현 오미나토항에서 부산을 향해 출발합니다. 4,730톤급의 대형 선박 우키시마호는 갑판의 길이만 100미터 정도가 되는 거대한 군함이었다고 해요.







 

1945/8/24 우키시마호 폭침!

일본 오미나토항을 떠나 부산으로 향하던 우키시마호는 돌연 방향을 틀어 교토부 마이즈루항으로 기항했고 이후 폭발과 함께 침몰하고 맙니다. 일본 정부는 이 사고로 조선인 524명과 일본 해군 25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실종되었다고 발표하지만, 당시 생존자 및 마이즈루항 인근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3,000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하네요.











 

우키시마호 침몰 원인

사고의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당시 일본 정부는 마이즈루항 앞바다에 깔려있는 미군이 설치한 기뢰에 의한 폭발이라고 발표합니다.

하지만 일본 주장과는 달리 일본이 고의로 배를 폭파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데요. 우키시마호 대학살 주장과 관련시킬만한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아요!





 

의문 1 폭발의 흔적

마이즈루항 앞바다에 깔려있던 미군의 기뢰에 의한 것이라면 외부 폭발을 의미하지만, 폭파 부분이 안에서 밖으로 휘어져 내부 폭발 의혹이 꾸준히 제기됩니다.





 

의문 2 안전항로를 운항한 우키시마호

당시 우키시마호는 안전항로를 따라 운항했다고 하는데요. 안전항로로 운항한 많은 배들 가운데 폭발한 배는 우키시마호 뿐이라는 것!



 

의문 3 부산을 향하지 않았다!?

일본 오미나토항에서 부산을 향해 출발했다던 우키시마호는 예정된 목적지인 부산이 아닌 일본 해안선을 따라 마이즈루 만으로 항해한 것이 밝혀졌습니다.





 

의문 4 지체된 인양 시점과 무성의한 조사

일본은 1950년과 1954년 두 차례에 걸쳐 우키시마호를 인양하여 사고 발생 후 9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음에도 제대로 된 조사와 원인 규명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의문 5 우키시마호 탑승 반대 시위했던 일본 승조원!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이 일어나고 4개월 후 연합군 요청으로 작성된 조사보고서가 공개되었는데요. 재일조선인연합이 만들어 맥아더 사령관 앞으로 제출된 보고서라고 합니다.

우키시마호 출항 전 일본 승조원들은 '조선인 때문에 목숨을 바칠 수 없다'며 위험 구역 항해를 반대하는 시위를 했다고 작성되어 있습니다. 그러자 일본 해군 참모장이 '의무를 수행해 깨끗이 목숨을 바치라'라고 폭탄선언을 했다는 내용도 기록되어 있었죠. 이미 일본 승조원들은 어떤 위험 가능성을 인지했던 것으로 보이는 대목입니다.







우키시마호 고의 폭침설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이 보고서는 익명의 일본인 연구자가 일본 정부 문서실에서 찾아내 최근 한국에 전달되었다고 합니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한국 정부의 움직임

우키시마호 폭침사건과 관련하여 노무현 정부 때 과거사 진상조사위원회 발촉 시켜 진상 조사를 하고자 했지만,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바뀌면서 과거사 진상조사위원회의 활동이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다른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문제와 비교해 비교적 우리에게 덜 알려져 있는 비극적인 사건이죠. 타이타닉호는 익히 알지만 우키시마호는 잘 모르는 우리의 현실.. 반성하게 됩니다! 



우키시마호 사건 손해배상 소송

우키시마호 생존자 및 유가족들은 배에 실어놓은 폭발물에 의해 사고가 났을 가능성을 두고 1992년부터 일본 정부를 상대로 10년여간 소송을 진행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원고 패소 판결이 납니다. 특히 2심 판결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는데요. '애석한 사고지만 국가가 배상하기는 어렵다' 또는 '소송으로 해결할 사항이 아닌 법 제정이 필요하다' 등의 판결 취지가 일반적이지만, 2심 판결은 '종전 후 난리통에 난 사고, 어쩔 수 없는 사고, 어쩌란 말이지?' 식의 판결이었다고...  당시 일본 야마모토 세이타 변호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말 엉터리 판결이자 최악의 판결"이라고 했다는군요. 





 

우키시마호 사건 추모제

일본 마이즈루 주민들은 1978년부터 40여 년 간 매월 8월 24일에 우키시마호 사고에 대한 추모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마이즈루 주민들의 자발적인 따뜻한 마음이 이렇게 긴 세월 동안 이어지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잘 모르고 지냈던 것이 부끄럽기도 하네요. 추모와 함께 지역 중학생에게 전쟁으로 인한 우키시마호의 참상을 알리는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다시는 그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함께 염원한다고 하네요. 부디 일본 그리고 아베 정권의 미진한 과거사 청산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영화 <우키시마호> : 일본은 살인자다

참혹한 역사에 대한 진실규명을 간절히 바라는 영화 우키시마호! 사고 원인은커녕 유골조차 반환받지 못하고 있는 우키시마호 침몰사건에 대해 우리 국민들의 많은 관심과 지지를 이끌어 내길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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