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사건 알고 영화보기! 지슬:끝나지 않는 세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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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슬>, 제주 4.3 사건에 대해 제대로 알고 보자!

 

2013년 개봉되었던 영화 <지슬:끝나지 않는 세월 2>가 또 한 번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영화 <지슬>은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 중 '제주 4.3 사건'이라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다룹니다. 이 영화가 주목 받는 까닭은 지난 21일 제주 4.3 당시 불법적으로 투옥돼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4.3 수형인들에게 사상 첫 형사보상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인데요! 71년 만에 이뤄진 재심 재판에서 수형인 18명은 총 53억 4000만 원을 국가로부터 보상받게 되었습니다. 

 

제주 4.3 사건 당시 10~20대의 어린나이에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분들에게 국가가 그 잘못을 인정한 것인데요. 하지만 이분들 뿐만 아니라 집단 처형되거나 행방불명된 분들도 너무나 많다는 걸 잊어선 안될 것 같습니다. 제주 4.3 사건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알아보고 영화 <지슬>을 관람해 보시는 것을 추천드려요!

 

 

 

1945 광복 직후 제주도!

1945년 8월 일본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국권을 되찾았지만 38선을 경계로 남북한은 원치않는 분단 상황을 맞이합니다. 미군정 아래 자주독립국가를 세우기 위한 건국준비위원회가 전국적으로 조직(이후 인민위원회로 개편)되었고, 제주도에서도 결성된 제주도 인민위원회는 자율적인 치안 활동에 주력합니다. 미군정은 제주도 인민위원회의 활동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나 한편으로는 서서히 우익인사들을 조직화시켰고, 인민위원회에 대항할 세력을 키워나가게 했죠.

 

 

1946년 8월 제주도 승격을 주장하던 우익세력의 손을 미군정이 들어주면서 이후 우익의 입지가 강화되었고 인민위원회에 대한 미군정의 탄압도 본격화됩니다. 또한, 극심한 흉년과 콜레라 발병, 미군정의 미곡 정책으로 인한 공출 등이 더해져 민심이 악화되고 맙니다.

 

 

1947 3.1절 발포사건

해방 후 두 번째로 맞는 1947년 3월 1일! 제주도 좌익진영이 도내 곳곳에서 기념 집회를 주최합니다. 제주북국민학교에서 기념식을 마친 군중은 가두시위에 나서는데, 이를 구경하던 어린아이가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치여 다치고 맙니다. 이때 기마경찰이 다친 어린아이를 그대로 두고 지나가자 격분한 군중들은 돌을 던지며 항의했고, 무장경찰은 이를 총격으로 대응하여 민간인 6명이 사망하고 맙니다. 이 발포사건으로 제주도 민심은 극에 달합니다. 

 

 

그러나 미군정과 경찰은 사태 수습보다 시위 주동자를 검거하는 일에 주력합니다. 이에 3월 10일에는 제주도청을 시발로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민·관 합동 총파업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미국은 이 합동 파업을 이유로 제주도를 '빨갱이 섬'으로 지목합니다. 본토에서는 응원경찰이 대거 파견됐고, 극우 청년단체인 서북청년회 단원들이 제주도로 들어와 행정기관을 장악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속칭 '빨갱이 사냥'을 구실로 테러를 일삼았고, 이에 좌익단체는 1948년 5월 남한 단독 선거를 앞둔 반대 투쟁을 계획합니다. 

 

 

1948 4.3 사건 발발

좌익단체 남로당 제주도당은 제주도민에 대한 탄압과 5.10 남한 단독선거에 대한 저항으로 무장봉기를 일으킵니다.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남로당 제주도당 군사부 산하 조직 350명의 무장대는 12개 경찰지서와 서북청년회 등 우익단체 단원의 집을 일제히 습격합니다. 

 

 

1948년 4월 28일 유혈사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다행히 미군정과 무장대와의 평화협상이 성사됩니다.

"72시간 안의 전투 중지, 무장 해제와 하산이 이루어지면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러나 평화협상 사흘만인 5월 1일 '오라리 마을 방화사건'으로 인해 협상이 파기됩니다. 우익 청년들이 벌인 방화사건이었지만, 미군정과 경찰은 '무장대에 의한 방화'인 것으로 '조작'합니다.  이때부터 평화적 해결 대신 무력에 의한 강경 진압이 본격화됩니다.  

 

 

1949 5.10 남한 단독 선거를 막아라.

무장대는 5.10 선거를 무산시키기 위해 주민들을 산으로 보냈고, 5.10 총선거의 200개 선거구에서 제주도 2개 선거구만이 투표수 과반수 미달로 무효 처리가 됩니다. 미군정은 이를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저해하는 불순세력의 음모로 판단하고 검거작전에 감행하며 6.23 재선거를 시도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하고 말죠. 결국 제주도에 대한 토벌작전이 실시되어 도민들이 집단 희생되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습니다. 

 

 

1948 8.15 대한민국 정부 수립

대한민국이 수립된 후 정부는 제주도 사태를 진행하기 위해 대대적인 강경 토벌작전을 실시합니다. 해안에서 5km 이상 들어간 중산간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로 간주해 총살하며, 중산간마을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집단으로 살생합니다. 

 

 

결국 2018년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됩니다. 일반 주민들까지 무장대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고, 폭도로 지목을 당하는 것만으로도 죽임의 사유가 되고 맙니다. 증오와 복수심이 커진 무장대들도 경찰 가족과 우익인사를 습격해 살해했으며, 이 과정에서 무고한 주민들도 상당수 희생됩니다. 증오로 인한 격한 충돌로 민간인들의 희생이 극에 달합니다. 그렇게 7년여간 지속되었고, 한국 현대사에서 6.25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사건으로 남게됩니다. 

 

 

제주 4.3 사건 피해실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목숨을 부지하고자 산으로 들어갔고 그렇게 무장대의 일원이 되어 희생되기도 합니다. 가족 중 청년이 사라진 집안은 '도피자 가족'이라 하여, 부모와 형제를 대신 죽이는 '대살(代殺)'이 자행됩니다. 재판절차도 없이 주민들을 집단 사살하기도 하죠.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 충돌 과정에서 2만 5,000 ~ 3만여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합니다.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분의 1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이라고 하네요. 가옥 4만여 채가 소실되었고 특히 중산간마을은 95% 이상이 불타 사라졌습니다. 제주 4.3 사건의 또 다른 아픔은 당시 사망 및 행방불명된 사람들의 무고한 희생이 당대에 그치지 않고 유가족에게 대물림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주 4.3 사건 희생자 유가족들은 연좌제에 의해 감시당하고 사회 활동에 심한 제약을 받게 됩니다. 

 

 

영화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 2>

제주 4.3 사건 영화 <지슬:끝나지않은세월2>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영문도 모른 채 산속으로 피신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정치적 사상이나 이념을 다루기보다는 비극적인 역사 현장에서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던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담고 있는데요. 2013년도에 개봉되면서 국내외 '화제의 영화'로 이목을 끌었습니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지독하고 처참했지만, 영화 지슬을 통해 제주 4.3 항쟁을 잊지 않으려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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